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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와인과 건강 | 계절에 어울리는 와인 Ⅳ. 겨울

 

고집불통을 위한 와인
몬포르티노

 

고집불통을 위한 와인을 고른다면 그것처럼 쉬운 일이 또 있으랴. 와인을 만드는 사람마다 모두가 다 자기 와인이 최고라고 하니 그저 눈감고 아무거나 골라도 될 성싶다. 타협할 줄 모르고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는 고집 센 분들은 알고 보면 깊은 속내를 지닌 순수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걸 뒤끝이 없다고 호평하기도 한다.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바롤로 중에서도 몬포르티노(Monfortino)는 의심의 여지 없이 최고의 바롤로다. 몬포르티노는 양조장 쟈코모 콘테르노(Giacomo Conterno)에서 나온다. 보통의 바롤로보다 2년 이상을 더 숙성하여 출시하니 바롤로 리제르바에 속한다.

 

작은 선술집 와인의 변신

우리로 치면 평안북도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지방에 자그마한 마을 몬포르테 달바가 있다. 이곳에서 1908년에 작은 선술집을 차린 뒤 식당에서 쓸 와인을 양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콘테르노 가문은 오늘날 바롤로의 전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의 양조장 주인 로베르토 콘테르노(Robero Conterno)는 형과 누나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기 때문에 혼자 고향에 남아 양조장을 지키고 있다. 양조장은 그의 조부 이름을 따 쟈코모 콘테르노라 지었다.

쟈코모(Giacomo, 1895~1971)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양조 일을 익혔다. 그 당시에는 포도밭을 소유하지 못해서 좋은 포도를 사서 와인을 만들었다. 그는 네비올로 품종에 관해 훤히 꿰뚫고 있었다. 텁텁한 타닌을 단맛이 나도록 버무려 만드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오랫동안 발효하여 잔당을 없애고 입안에서 쫙 퍼지는 진한 타닌의 와인을 만들어 냈다. 그는 마을에서 이름난 레 코스테(Le Coste) 호도밭의 포도를 구매하였다. 1920년은 빈티지가 특히 좋아 와인을 종전보다 더 오래 숙성시켜 바롤로를 출시하였으며 그 일므을 몬포르티노라고 정했다. 긴 발효 기간은 당시에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비올로의 두꺼운 포도 껍질 속에 담긴 타닌을 잘 빼내어 오랫동안 숙성을 하면 최고의 와인이 나온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이 몬포르티노의 최초 빈티지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많은 양조장에서는 몬포르티노의 품질을 교훈 삼아 양조하기 시작했다. 쟈코모 콘테르노는 바롤로의 앙리 자이에(1922~2006, 포도밭 관리를 위해 화학 비료를 멀리 하였고 저온 침용법을 통해 피노 누와의 특질을 잘 표현하였다. 많은 부르고뉴 양조장들이 그의 방침을 따랐다.) 같은 인물이다.

 

 

포도가 뛰어난 해에만 만드는 와인

몬포르티노는 고향 마을 몬포르테 달바에서 따온 이름이다. 강하고 인상적인 그 맛은 당시에 큰 인기를 얻어 선술집에는 늘 손님이 붐볐다고 한다. 그렇다고 쟈코모가 몬포르티노를 매년 출시한 것은 아니다. 포도 품질이 뛰어난 해에만 만들었다. 그렇지 못하면 그냥 일반 바롤로만을 담갔다. 그는 아버지를 여인 1934년부터 1971년 숨을 거둘 때까지 37년간 21개 빈티지의 몬포르티노만을 생산했다.

쟈코모는 품질에 관한 한 전혀 타협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더 이상 유리로된 드미쟈니에다 와인을 담아 팔지 않았다. 대신 전통적인 긴 나무통 카라(carra)에 담아 마차에 싣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판매했으며 멀리 제노바와 토리노까지 직접 찾아가서 납품을 하였다. 드미쟈니에 담긴 와인은 바로 마실 목적의 짧은 수명이었지만, 그는 나무통에 담아 오래 묵혀도 되는 와인을 만들었다. 고객을 찾아다니며 품질 좋은 와인을 알린 쟈코모의 행동은 작고한 페트뤼스의 장-피에르 무엑스(1913~2003, 샤토 페트뤼스의 신화를 맨손으로 일군 중개상으로 젊은 시절 직접 와인을 싣고 마을의 여기저기 고객을 찾아다니며 와인 판매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헤트뤼스는 현재 그의 아들 크리스티앙이 그 뒤를 잇고 있다)를 연상시킨다.

 

꼿꼿하게 전통을 숭상한 인물

2004년에 작고한 로베르토의 부친 조반니는 생전에 나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 바롤로를 만든다. 구식이지만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그 방법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로베르토 역시 아버지에게서 배운 방식밖에는 달리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말 속에는 자부심과 고집이 담겨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도 충분하고도 믿는 조반니도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 통만은 받아들였다. 이전에 조반니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는 순간적인 와인 상태의 변화 시점을 놓칠까봐 추운 양조장에서 밤을 새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 모든 결정은 오직 자신의 직관에만 의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스테인리스 스틸 통을 도입한 후에는 이러한 고통이 사라졌다. 온도를 잡아주고 와인 상태를 지켜주는 스테인리스 스틸 통 덕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 조반니는 와인 찌꺼기를 일체 거르지 않으며 정제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만든다. 포도를 따서 담는 들통도 아직까지 나무통을 사용한다. 이유를 물으니 포도 냄새가 배지 않아 다른 품종이 섞여도 괜찮고 세척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콘테르노의 수확은 그래서 플라스틱 통이 사용되지 않는다.

 

로버트 파커가 평한 잊을 수 없는 맛

1974년에는 로베르토 콘테르노 가문이 그토록 바라던 자기 포도밭을 얻었다. 지금은 14헥타르의 면적에 네비올로, 바르베라 등을 가꾸고 있다. 이 밭에서 거둔 1978 빈티지가 그의 밭에서 난 최초 빈티지다. 이 와인은 현재까지 출시한 몬포르티노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파커의 <와인 애드보킷>에 의해 1978 빈티지는 100점을 받은 적도 있고 현재는 98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 당시 시음 후기를 보면 잊을 수 없는 와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콘테르노의 포도밭 9헥타르에는 네비올로를, 나머지 5헥타르에는 바르베라를 재배한다. 몬포르티노는 9헥타르 중 2헥타르에 해당하는 최고의 구역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만든다. 이곳의 이름은 카쉬나 프란차(Cascina Francia)이다. 생산량은 칠천 병에서 만 병 정도 된다.

2000년 빈티지의 몬포르티노는 붉은 과일의 집중된 아로마가 풍긴다. 무척 자연스러워 과일을 씹은 듯한 상쾌한 향이 난다. 질감이 풍족하고 여운도 길어 일반 바롤로의 풍미가 사방으로 퍼진다. 그 맛이 참 순수하다. 한 점의 티끌도 없을 만큼 맑고 꺠끗하다.

이탈리아의 와인 가이드 중 하나인 <에스프레스 와인 가이드>는 최근 2008년판 출간 기념으로 경매를 마련했는데 거기서 가장 비싸게 팔린 와인이 몬포르티노. 1990년 빈티지가 출품되었는데 입찰 개시를 하자마자 많은 경쟁자들이 달려들어 결국 추정 가격에서 85퍼센트에 상승한 병당 가격 432유로에 낙찰되었다. 이 값은 동일 빈티지 안젤로 가야의 바롤로 스페르스 194유로보다 높으며, 1988년 빈티지 사씨카이야의 177유로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다. 또한 최고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인 솔데라나 볼게리의 최고급 와인 마세토보다도 높다.

훌쩍 자란 자녀 생년의 와인을 찾고 있는가. 그것도 이탈리아 와인을 찾고 있따면 선택권이 별로 없다. 몬포르티노 아니면 비욘디 산티 정도가 있을 뿐이다. 정년 퇴직한 아버지 혹은 칠순이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한 와인을 찾는가. 어른 연세만큼 나이든 와인을 찾는다면 몬포르티노를 추천하고 싶다. 몬포르티노를 만드는 로베르토는 2004년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도 고집을 부린다. 상당히 자신만만하고 도도하다. 아버지 외에는 달리 배울 길이 없었던 막내 로베르토는 할아버지를 닮은 아버지로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의 바롤로를 오늘도 만들고 있다. 그의 고집이야말로 와인의 품질을 보증할 만하다.

 

 

다른 듯 같은 매력

 

출처: <올 댓 와인. 2(명작의 비밀>, 조정용

저자: 조정용

국내 최초의 와인 경매사인 그는, 첫 책 <올 댓 와인?을 통해 와인을 둘러싼 문화와 역사부터 와인을 제대로 고르는 법, 세계를 주름잡는 와인들에 얽힌 이야기, 와인 경매와 와인 투자까지를 속속들이 알려줌으로써 와인을 두려워하는 독자들에게는 용기를,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공감을 불어일으킨 바 있다.

1년의 3할 이상을 세계 와인 명가 탐방에 투자하며 매년 업데이트되는 와인 자료를 모으고 직접 맛을 본 느낌을 담백하게 풀어놓은 <올 댓 와인2>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명품 와인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비밀을 탐색해가는 과정을 현장감 잇게 들려주어 진정한 와인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책이다.

와인 저널리스트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포도주개론>을 강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와인이 요리를 만났을 때>(고저)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