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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와인과 건강 | 계절에 어울리는 와인 Ⅰ. 봄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금방 친숙해지는 매력,
모스카토 다스티

 

봄을 통째로 갈아 만든 와인이 있다. 봄을 액화한 것 같은 상쾌하고 향긋한 와인. 향기를 맡으면 마치 꽃다발을 한 아름 안은 것 같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 중에는 과일 향기도 있다. 과일 바구니를 받았을 때 나는 다채로운 과일 향이 솔솔 풍긴다. 바로 이것이 모스카토 다스티이다.

와인의 품질은 포도의 품질에서 결정된다고 하지만 몸으로 체험하기 어렵고 관념적으로 들린다. 사실 포도 맛과 와인의 맛이 딱 떨어지는 와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모스카토 다스티는 예외다. 포도즙 자체라고 해도 될 만큼 포도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싱그럽고 생생한,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맛이다. 도수는 조금 더 낮은 게 있고 좀 더 높은 게 있겠지만 약 5도 수준이다. 그러니 맥주처럼 벌컥벌컥 마셔도 크게 해가 될 일은 없다. 물론 음미해 가며 천천히 마시면 더 좋다. 음 만난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고 싶다면 이 와인이 도움이 될 것이다.

 

와인 잔이 없어도 좋다!

 

모스카토 다스티는 발효를 의도적으로 중단하여 알코올 도수가 낮다.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으로 포도 품종은 모스카토 비앙코이다.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는 아스티 지역의 모스카토란 뜻으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주)DOCG 등급에 속한다.

원산지명이 비슷한 아스티(Asti)와는 바르다. 아스티는 아스티 스푸만테라고도 부른다. 거품이 보글보글 일어나는 스파클링 와인이며 맛이 달다. 품종과 등급은 둘 다 동일하다.

모스카토 다스티는 전천후 와인이다. 낮은 알코올 도수 덕분에 브런치에 먹어도 좋고 점심, 저녁 어느 때라도 좋다. 와인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이 와인만큼은 친근하게 느낀다. 그저 차갑게 대령하기만 하면 된다. 와인 잔이 없으면 어떠리. 맥주잔 같은, 와인 잔에 비하면 다소 투박하다 해도 그런 잔이라도 있다면 한 모금 마셔 보시라. 청량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느껴질 것이다. 다행히 와인 잔이 준비되어 있다면 모스카토 다스티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다. 잔에 콸콸 쏟아 붓는 동안에 잔 속에는 복숭아, 살구, 자두, 멜론 같은 싱그러운 과일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살짝 박카스 맛이 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스카토 다스티로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양조장이 있다. 이름은 라 스피네타.

 

맹수의 왕 사자 그림으로 와인의 왕 바롤로를 표현하는 라 스피네타의 ‘캄페’
조르지오 리베티가 만드는 세 가지 바르바레스코(아래)

 

양조장의 유능한 요리사, 조르지오

조르지오 리베티(Giorgio Rivetti)1981년에 라 스피네타(La Spinetta)’를 설립하여 두 명의 형님과 누나와 함꼐 양조 일을 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주로 포도송이가 많이 열리는 모스카토 비앙코를 돌보았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이웃과는 달리, 특정 포도밭의 모스카토만으로 모스카토 다스티를 출시했다. 브리코 콸리아(Bricco Quaglia)가 그것이다. 그의 손은 그저 그런 화이트 와인을 맛깔나는 것으로 변모시켰다. 나는 화이트 와인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향긋한 모스카토를 선택할 것이다.

와인은 음료로서 기본적으로 맛과 향이 좋아야 한다고 조르지오 리베티는 믿고 있다. 그는 포도나무를 돌보지 않을 때는 음식 장만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지런한 양조가 이다.

오늘은 캐나다에서 손님들이 오시기 때문에 저녁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스터 조도 괜찮다면 같이 식사하시죠?”

감기 기운이 있어 호텔 방에서 푹 쉬려던 생각을 바꾸어 난 그의 양조장에 더 머물기로 했다. 그는 시장에서 산 어린 염소 고기를 큰 냄비에 재웠다. 한쪽에서는 리조토를 연신 젓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누나가 요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양조장 부엌 한복판을 차지한 사람은 누나가 아니라 바로 조르지오였다. 알고 보니 조르지오는 요리가 취미이자 특기인 꽤 유능한 요리사였다.

2층짜리 양조장은 보통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궁금했었다. 1층은 셀러와 양조장, 2층은 사무실 정도로 구성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의 바롤로 양조장은 약간 달랐다. 2층 한쪽에는 큰 식탁과 붙박이장 그리고 싱크대가 있고 환풍 시설까지 갖춘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부엌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수입상과 와인 저널리스트 등을 대접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주인은 직접 양조한 화이트나 레드 와인에 손수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내놓는다. 그날 밤에 동석했던 캐나다 수입상이 사실 조르지오의 와인보다 음식이 더 맛있다며 농담을 할 정도로 음식이 맛깔스러웠다.

 

피에몬테인들의 열망, 바를로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바롤로 포도밭 한 켠을 드디어 마련했다고 조르지오가 말했다. 그런 자신이 너무 대견하단다. 그래서 라벨에는 Vürsü라고 또렷이 새겼다. 이 말은 피에몬테 방언으로 갈망이란 뜻이다. 이 단어의 철자와 뜻을 살펴보면 독일어의 Verlangen(갈망 혹은 열망)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실 이곳 피에몬테는 독일어를 구사하는 스위스와 무척 가깝다.

피에몬테인들은 누구나 다 바롤로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바롤로가 피에몬테 지방에서 나는 가장 좋은 와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롤로를 와인의 왕이라 믿는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직접 와인의 왕을 빚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겨 그토록 바라는 것이다. 본래 와인은 바롤로처럼 아주 오랫동안 그 자태를 유지해야 하고, 복합적인 향내가 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 바롤로는 와인의 전형이다. 바롤로야말로 숙성력을 제대로 지닌 와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조르지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는 바르바레스코의 훌륭한 포도밭인 스타르데리(Starderi)에 살면서도 항상 다른 곳에 마음을 두었었다. 그의 마음이 가 있는 곳은 바롤로였다.

 

조르지오는 스타르데리에서 살다가 이곳 바롤로로 몇 년 전에 이사해 왔다. 양조장을 크게 짓고 바로 그 옆에 살 집 지었다. 그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에 매우 만족해한다. 그의 오랜 열망이 결실을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몇 년 전에 캄페(Campe) 포도밭을 샀다. 대량 생산하는 양조장 지오르다노로부터 사들인 언덕배기의 포도밭인데 둥근 봉우리가 탐스럽게 생겼다.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던 때가 6월이라고 한다.

바롤로를 양조한다는 포도밭에 어쩜 그렇게 포도가 많이 달려 있던지요!”

그는 구입하자마자 열매솎이부터 시작했다. 나무에 송이가 많이 달리면 포도의 품질이 떨어져 최고급이 될 수 없다. 뿌리에서 끌어올린 영양분이 열 송이에 나뉘는 것과 다섯 송이에 나뉘는 것은 다르지 않겠는가. 송이 수가 적어야 영양분의 집중이 이루어져 좋은 와인을 빚을 수 있다.

그는 캄페 포도밭의 포도송이를 한 나무에 5~6송이만 남기고 모조리 잘라냈다. 그리고 거기서 수확한 포도를 프랑스산 바리끄에서 숙성시켜 부드럽고 온화환 바롤로를 잉태했다. 무명의 캄페는 그의 손을 통해 이제 유명한 포도밭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최고급 와인을 열망해 온 그의 의지 덕분이다. Vürsü 말이다. 그는 끊임없는 열망과 염원으로 모스카토에서 바르베라로 진화했고, 곧이어 바르베라에서 네비올로로 성장했다. 원산지로 보면 랑게에서 바르바레스코로, 바르바레스코에서 바롤로로 옮겨간 것이다. 시작은 드넓은 랑게에서 그것도 가벼운 모스카토 다스티로 했지만, 이제는 집중된 지역에서 무겁고 중후한 바롤로로 확장해 온 것이다. 그는 모든 양조가들의 꿈을 이루어냈다.

바롤로를 양조하는 열한 곳의 마을 중에서 유명 포도밭이 별로 없는 곳이 그린자네 카부르(Grinzane Cavour). 이곳에서 캄페는 떠오르는 샛별 같은 포도밭이 되었다. 2006년에 그의 솜씨는 빛을 발하여 최고조에 다다랐다. 라 스피네타는 감베로 로쏘에 의해 이탈리아 전체 양조장 가운데 역대 두 번째로 별 세 개의 영예를 획득하였다.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 메뉴에 간혹 모스카토 다스티를 스파클링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약간의 스파클링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파클링은 아니다. 병을 자세히 보라. 일반 와인병처럼 일자형 코르크로 막혀 있다. 그러니 그 속의 압력이 스틸 와인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스파클링 와인에 미하면 거품이 훨씬 적다.

모스카토 다스티는 보졸레 누보만큼이나 빠른 와인이다. 판매처가 확실하기만 하면 수확한 다음 달에도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발효를 중단해서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상쾌함과 달콤함으로 버무려진 모스카토 다스티는 바로 몇 주 전까지 포도밭에 달려 있던 탐스런 청포도였다.

모스카토 다스티는 케익과 잘 어울린다. 출출한 오후에 한 병 따기에 그만이다. 가격은 보통 2만원에서 4만원대다.

와인 애호가는 쉬지 않는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봄,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에도, 그리고 추운 겨울까지 와인 애호가들은 사계절 내내 와인을 찾는다. 그들에게 와인 없는 휴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입맛이 없을 때 달콤한 모스카도 다스티보다 입맛을 당길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외친다. 봄날의 무료함을 달래는 데도 제격이다. 와인을 모르는 아니 와인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자라도 박카스처럼 상쾌한 이 와인만큼은 거절 못 할 것이다.

 

 

다른 듯 같은 매력

 

 

 

출처: <올 댓 와인. 2(명작의 비밀)>, 조정용

저자: 조정용

국내 최초의 와인 경매사인 그는, 첫 책 <올 댓 와인?을 통해 와인을 둘러싼 문화와 역사부터 와인을 제대로 고르는 법, 세계를 주름잡는 와인들에 얽힌 이야기, 와인 경매와 와인 투자까지를 속속들이 알려줌으로써 와인을 두려워하는 독자들에게는 용기를,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공감을 불어일으킨 바 있다.

1년의 3할 이상을 세계 와인 명가 탐방에 투자하며 매년 업데이트되는 와인 자료를 모으고 직접 맛을 본 느낌을 담백하게 풀어놓은 <올 댓 와인2>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명품 와인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비밀을 탐색해가는 과정을 현장감 잇게 들려주어 진정한 와인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책이다.

와인 저널리스트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포도주개론>을 강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와인이 요리를 만났을 때>(고저)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