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로 둘러싸인 공간, 정원
정원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인류가 유목과 수렵의 삶에서 발전하여 정착생활을 시작함에 따라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살게 된 인류는 생존의 요소에 필수적인 음식을 구하기 위해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곡물과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식물들을 심었고, 더 나아가 관상을 위한 나무도 옮겨 심었다. 식물에 공급할 물을 대기 위해 물길을 내거나 연못을 만들게 되었다. 이 시작 속에서 눈 여겨 볼 특징이 있다. 자연 속에서 살았던 인간이 자연을 향해 울타리를 치고 그들이 만든 땅을 보호하려고 했다. 여기에서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을 볼 수 있다. 바로 ‘담장이 쳐진 공간(fenced)’이다.
그렇다면 정원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정원’이란 단어의 어원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영어로 garden, 독일어로 garten, 프랑스어로는fardin 등 정원을 뜻하는 단어의 뜻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폐쇄된 공간’이다. 한자의 원(園)도 자세히 보면 그 의미가 이와 비슷하다. 큰 입 구(口), 그 안에 흙 토(土), 작은 입 구(口), 그리고 옷 의(衣) 자로 다시 구성이 되는데, 상형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口(큰 입 구): 정원을 감싸고 있는 ‘담장’을 상징
土(흙 토): 대지 혹은 땅의 구성인 ‘흙’을 상징
口(작은 입 구): 물을 담고 있는 ‘연못’을 상징
衣(옷 의): 색상을 띄고 있는 식물, ‘꽃’을 상징
Paradise, ‘낙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의 원래 의미도 폐쇄돼 있는 공간이다.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살던 페르시아인들은 늘 풍요로운 정원을 꿈꿨다. 이것이 야생의 동물과 수많은 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인 이상향으로 이어졌다. 페르시아인들에게 파라다이스는 이상향이면서 닫혀진 공간, 정원이었던 셈이다. 또 다른 예로 에덴 동산이 있다. 우리는 흔히 ‘동산’으로 번역을 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정원’으로 에덴동산 역시 기독교에서 꿈꾸었던 이상향의 공간이었다. 이 에덴동산도 성경에 의하면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닫혀진 공간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원이란 무엇인가? ‘정원은 인간이 꿈꾸었던 이상향의 닫혀진 공간’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예술일까?
정원은 자연스럽지만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예술의 공간에 가깝다.
정원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예술의 공간이라는 정의가 다소 생소하다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14~17세기) 시대를 살펴볼 수 있다.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했던 중세가 끝나고 인본주의에 기본 정신을 둔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들은 우리의 삶을 자연과 예술 두 영역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자연 그 자체는 인간이 손을 댈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보았고, 인간의 영역은 자연 속에 살고는 있지만 예술에 의해 향상된 공간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형용사 Artificial(인공적인)과 Natural(자연스러운)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의 철학에서 비롯되어 Art를 인간의 영역, Nature를 신의 영역으로 인식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Artificial은 ‘Art’에서 파생되었고,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반대말로 ‘Natural’이 나온다.
사람들은 왜 정원을 만들까?
이런 정원을 왜 만드는 것일까? 그 목적을 알아보자. 다른 동물들은 자연 속에서 일부로서 살아왔는데 인간은 인간만의 또다른 자연인 정원을 만들며 살아왔다. 영국의 정원 역사가 톰 터너(Tom Turner)는 자신의 책 [정원의 역사(Garden History)]에서 우리가 정원을 만드는 이유를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우리의 몸을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정원의 대표적인 형태로 생존을 위해 야채와 채소를 기르는 정원이나 약용식물을 키우는 정원 등이 있다. 둘째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정원인데, 현대 사회에서는 식물원, 스포츠 공원, 수목원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셋째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위해 정원을 만들기도 한다. 신전의 정원과 사찰, 사원, 명상을 위한 정원을 예로 들 수 있다.
동양의 정원
동양에서는 정원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동양에서도 정원은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간이었다. 사상과 수도, 정적인 정서와 마음의 위안을 강조하는 동양의 정원은 중국에서 한국, 그리고 일본으로 영향을 끼치며 비슷하지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 당시 사람들의 종합적 삶의 표현과 역사성이 고스란히 정원에 녹아 있다.
조선 선비들은 정원을 선비가 갖춰야 할 품격으로 바라봤다. 한국에서 정원은 주로 왕과 사대부들의 것이었다. 18~19세기로 오면 선비들에게 정원과 원예는 일반화된 취미 중 하나로 떠올랐고, 1800년대 후반 서울 사대문 안에는 3000여 개의 정원이 존재했다. 조선 후기에 성행한 <의원기>에서 당시 선비들의 정원 사랑을 잘 볼 수 있다. 바로 상상 속 정원에 대한 저술로, 중인과 서인을 비롯해 비용과 출세 유무와 관계없이 마음껏 정원을 가질 수 있는 길이었다. 이원호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문인들의 이상향에 대한 관념이 상상 속 정원을 통해 표현된 것으로, 당시 정원 열풍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다”라고 말했다.
옛 그림 속에도 정원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정원은 동양 미술에서 중요한 화제로 쓰였다. 중국에서 원림이라는 거대한 중국식 정원이 많이 그려졌다. 특히 명나라의 명나라 대표 화파인 오파들이 원림을 주로 그렸고, 실제 그들이 활동했던 정자가 오늘날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조선의 옛 그림 속에도 한국 정원의 특징인 별장의 정원과 정자가 많이 남아 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도시에서 군주를 모시고 자연과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도로 별장 정원을 만들어 정자에서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감상했다. 바로 ‘차경’ 문화다. 또한 산속으로 들어가 고즈넉한 삶을 즐기는 은둔의 장소로도 정원이 쓰였다.
정원이 필요한 오늘
정원은 시대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정원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생각해 볼 때, 정원은 사람들의 마음속 이상향을 개인의 현실 공간에 실현하려는 노력이었다. 귀한 정원 하나를 만들고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 자연을 대하는 자세, 그들이 정원에서 누리고자 했던 여유를 배워보자.
이제는 정원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그 삶에 지쳐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국 각지에 정원을 만들었다. 현대사회는 더욱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도시가 발달해 이제는 땅 한 뼘 갖기 힘든 상황이 와도 우리는 영원히 정원을 포기 못할지도 모른다. 정원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꿈과 이상향을 포기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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