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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건강 | 계절에 어울리는 와인 Ⅱ. 여름

AVOCADO 아보카도 2019. 7. 1. 13:45

 

차갑게 대령하시오!

프로세코 메들리

 

유럽에서도 지방색이 강하기로 이름난 이탈리아에서는 곳곳에 다양한 스파클링 와인이 있다. 그들은 그걸 스푸만테라고 부른다. 특히 베네토 지방에는 프로세코(Prosecco)라 불리는 스푸만테가 있는데, 포도 이름 역시 프로세코. 양조장에 따라서는 거기에다 피노 비앙코, 피노 그리지오, 샤르도네 등을 혼합하기도 한다.

프로세코 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것은 프로세코 디 코넬리아 노-발도비아데네(Prosecco di Conegliano-Valdobbiadene). 도저히 외울 수 없을 것 같은 긴 이름이지만 내용을 보면 좀 낫다. 코넬리아노 마을과 발도비아데네 마을 사이의 비탈진 특정한 구역에서 나는 특정한 포도 종류가 특정한 방식으로 양조 되었을 때 이렇게 부른다. 와인의 등급은 DOC 등급이다. DOC는 프랑스의 AOC와 유사한데, 이 등급을 받은 와인은 와인의 원산지를 표시할 수 있다. 그 원산지 부여에 필요한 여러 조건을 지켜야 하지만 그 이름 자체가 시장에서는 신용으로 인정되므로 쉽게 말해서 품질이 어느 정도 보장된 셈이다. 그러나 2010년 빈티지부터는 등급이 상향되어 DOCG가 된다.

 

와인 통에 빠진 치즈

양조장 토폴리(Toffoli)의 주인 빈첸초 토폴리는 어릴 적에 떠났던 고향 마을로 돌아와 1990년부터 프로세코 DOC를 생산하고 있다. 5헥타르의 조그만 포도밭에서 프로세코를 키운다. 양조 학교 출신의 동생과 양조 학교를 최근에 졸업한 딸과 함께 소규모 포도원을 일군다. 프로세코는 부드럽고도 상큼한 맛이 특징이며 과일에 비유하면 귤보다는 사과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난했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 지역 특산인 드렁컨 치즈(drunken cheese)’ 이야기도 해주었다. 1917년 가을에 이 마을에 침입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군은 먹을 것을 있는 대로 걷어 갔다. 양젖 치즈인 페코리노를 샅샅이 뒤져 빼앗아 가려는 군인들을 속이기 위해 가족들은 그 치즈 덩어리를 발효 통 속에 넣고 포도 껍질로 덮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치즈를 지켜낼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나 마을은 다시 평온을 찾았다. 전쟁의 상처는 잊혀 갔고 생활은 거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치즈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았다. 발효가 끝난 포도 껍질 속에 묻혀 있던 페코리노의 표면에는 붉은색이 물들었고, 치즈에는 와인 아로마가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치즈 맛에 반해 버렸다. 드렁컨 치즈처럼 부드러운 치즈에는 프로세코 파시토가 잘 어울린다. 파시토는 수확한 포도를 그늘에서 오랫동안 건조시켜 양조한 것으로 잔당이 많이 남이 있어 무척 달다.

 

프로세코 지도

 

프로세코의 왕, 발도

양조장 발도(Valdo)의 발도는 발도비아데네의 줄임말로서 대규모의 시설을 보유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양조장이다. 매년 7백만 병의 프로세코를 양조한다. 양조 책임자 지노 치니(Gino Cini)는 코넬리아노 양조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4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프로세코는 특별한 순간에 분위기를 잡고 마시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차갑게 대령하기만 하면 되는 가볍고 쾌활한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말했다. 엄숙하게 맛과 향으르 음미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마시면 된다.

양조장 비졸(Bisol) 집안은 베니스 출신으로 1542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포도밭의 토양 관리를 세심하게 살피며 2006년부터 비오디나미 농법으로 전환했다. 주변 포도밭과 떨어져 있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 농법의 개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농법은 일절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포도나무를 키운다. 그리하여 풍성한 과일의 맛보다는 땅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광물성의 기운을 와인으로 표현한다. 색깔도 더 맑으며 향기 속에 미네랄이 잔뜩 녹아 있는 그런 와인이다.

포도밭 주변에는 올리브 나무도 있다. 이런 북쪽 지방에서도 올리브가 자랄 수 있느냐, 정말 괜찮은 열매를 맺느냐고 이것저것 물었더니, 양조장 주인 지안카를로 비졸(Giancarlo Bisol) 여기가 북방 한계선이며 17세기부터 키우기 시작한 올리브는 한때 고품질 기름을 생산하기도 했으나 점점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대답했다. 양조장에 조성한 작은 호텔은 깨끗하고 편리하게 시설되어 특히 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이 소유하고 있는 작은 섬 마조르보는 베니스 앞에 위치해 이곳 역시 인기가 좋다.

 

 

모차르트가 반한 와인, 마르제미노

양조장 벨렌다(Bellenda)1987년에 세워진 이래 현재 움베르토 코즈모(Umberto Cosmo)가 동생 루이지(Luigi)로부터 기술 자문을 받으며 운영하고 있다. 루이지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분교에서 양조학 석사 과정을 이수한 연구파다. 움베르토의 아내 친지아(Cinzia)2004년부터 알리체(Alice)라는 양조장을 따로 창건하여 프로세코를 만들고 있다. 비졸처럼 작은 호텔도 운영한다. 이탈리아 농가가 자력갱생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러한 쉴 곳을 운영하는 것을 아그리투리지모(Agriturisimo)라 한다.

벨렌다가 있는 곳은 코넬리아노 마을 북쪽에 위치한 비토리오 베네토 마을이다. 이 마을은 불세출의 대본 작가였던 로렌조 다 폰테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그는 모차르트를 위해 오페라의 가사를 지었다. <피카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등이 그것이다.

코넬리아노에는 프로세코만 있는 게 아니다. 레드 와인도 있다. 그중 콜리 디 코넬리아노가 대표적이다. ‘코넬리아노의 언덕이란 뜻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그리고 두 품종을 혼합해 만든다. 이것이 바로 마르제미노(Marzemino). 모차르트도 그 맛에 반했다고 전해진다. 마르제미노는 색이 검은 포도로 진한 색깔을 띠며 과실미가 농후하게 풍기는 특징이 있다.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가사 중에 엑셀런트한 마르제미노라는 대목이 있다. 모차르트의 고향이 오스트리아여서 그가 주로 오스트리아 와인을 마셨을 테지만, 궁전에서 요청한 오페라를 완성하려면 로렌조의 탁월한 대본이 필요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아마도 로렌조의 고향에서 나는 와인들을 줄줄 꿰고 있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거품만 나면 샴페인이라고들 한다. 샴페인은 프랑스의 한 지역 아인일 뿐인데도 말인다. 그만큼 샴페인의 브랜드 파워가 크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에서 나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프로세코가 있다. 프로세코는 간결한 양조 과정을 거쳐 빠른 시간 내에 출시되므로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며 싱그러운 맛이 그 특징이다. 쾌활하고 밝은 느낌이 난다. 플루트 모양의 긴 잔이 없어도 괜찮다. 화이트 와인 잔에 담아도 좋다. 프로세코 최고의 매력은 가격이다. 만드는 시간이 짧으니 당연한 결과다. 프로세코는 묵히지 않는다. 바로바로 마셔야 제맛인 스파클링 와인이다. 아주 차갑게 준비해서 기분 좋게 외친다. 프로세코!

 

단아한 코넬리아노 성 – 출처 : rossiwrites.com
바티스토티(Battistotti) 양조장의 마르제미노

다른 듯 같은 매력

 

 

 

출처: <올 댓 와인. 2(명작의 비밀)>, 조정용

저자: 조정용

국내 최초의 와인 경매사인 그는, 첫 책 <올 댓 와인?을 통해 와인을 둘러싼 문화와 역사부터 와인을 제대로 고르는 법, 세계를 주름잡는 와인들에 얽힌 이야기, 와인 경매와 와인 투자까지를 속속들이 알려줌으로써 와인을 두려워하는 독자들에게는 용기를,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공감을 불어일으킨 바 있다.

1년의 3할 이상을 세계 와인 명가 탐방에 투자하며 매년 업데이트되는 와인 자료를 모으고 직접 맛을 본 느낌을 담백하게 풀어놓은 <올 댓 와인2>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명품 와인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비밀을 탐색해가는 과정을 현장감 잇게 들려주어 진정한 와인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책이다.

와인 저널리스트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포도주개론>을 강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와인이 요리를 만났을 때>(고저)를 출간했다.